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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클라베의 허상- 밀실에서 뽑힌 교황이 신의 뜻?

heezzling02 2025. 5. 3. 21:41

2013년 3월 12일 바티칸에서 콘클라베가 열리기 전 추기경들이 찬송가를 부르고 있다. /AFP연합뉴스

 

 

전 세계 10억 명이 넘는 가톨릭 신자들의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다. 그러나 정작 이 중대한 절차에 평범한 신자들은 단 한 사람도 참여하지 못한다. 교황 선출회의, 즉 콘클라베는 오직 교회 내 최상위 성직자인 추기경들만이 참여하는 폐쇄적 투표로 진행된다. 그것도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바티칸의 밀실에서 벌어지는 철저한 비밀 회의다. 겉으로는 전통과 경건함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현대 민주주의와는 전혀 맞지 않는 낡은 권위주의적 관행일 뿐이다.

‘콘클라베’라는 말 자체가 라틴어로 ‘열쇠로 잠근 방’을 뜻한다는 사실은 이 절차가 얼마나 폐쇄적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약 120명 남짓의 추기경들만이 이 회의에 입장할 수 있으며, 이들은 모두 이전 교황이 임명한 엘리트 성직자들이다. 전 세계 수많은 신자들의 신앙과 일상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지도자를 뽑는 일인데도 불구하고, 일반 신자뿐 아니라 대다수의 성직자들마저도 선출 과정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이 정도 규모와 영향력을 가진 조직에서 이렇게 배타적이고 비민주적인 결정 구조를 유지하는 사례는 오늘날 찾아보기 어렵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 선출을 ‘성령의 인도’라며 신의 뜻으로 포장한다. 새 교황이 발표되면 “신이 선택한 분”이라는 말이 반복되며 경외심을 자극한다. 하지만 이런 미화 뒤에 감춰진 현실은 정반대다. 외형상은 기도와 찬송으로 둘러싸인 듯 보이지만, 실상은 정치적 셈법과 연합이 오가는 인간 중심의 권력 다툼이다. 일부 추기경은 개혁을 주장하고, 다른 일부는 보수적 안정을 고수하면서 서로 연대를 맺고 표를 나눈다. 결국 교황은 신의 선택이 아니라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경우가 다반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을 “신의 뜻”으로 단정짓는 것은 사실상 신앙을 앞세운 현실 왜곡에 가깝다.

콘클라베가 철저히 비공개로 운영되고, 의도적으로 신비화되는 구조는 교회 권력의 독점적 재생산을 가능케 한다. 외부의 감시나 견제 없이 진행되는 이 선출 절차는 교회 지도부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이는 마치 봉건시대의 영주들이 성문 안에서 차기 군주를 은밀히 추대하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교황직은 극소수 성직자 집단 내부에서만 계승되며, 이는 종교권력의 세습 구조를 현대까지 그대로 끌고 온 셈이다.

오늘날까지도 평신도나 하위 성직자의 목소리는 완전히 배제된 채 교회 지도자는 일방적으로 정해진다. 신자들은 그 결과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기를 요구받는다. 이런 방식은 민주주의 시대의 핵심 가치들과 근본적으로 충돌한다. 주권재민과 투명성이 보편적 상식이 된 시대에, 교회만이 유독 전근대적 권위체계를 고수하는 것은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물론 교회는 “종교는 세속 국가와 운영 원리가 다르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전 세계인의 신뢰와 존경을 기대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지도자 선출의 폐쇄성과 불투명함을 종교적 전통으로 합리화한다면, 이는 결국 교회의 도덕적 권위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시대는 이미 변했다. 비밀 회의에서 태어난 교황이라는 이 낡은 역설을 교회가 언제까지 고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