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지도자를 국가가 임명한다고?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 같은 황당한 이야기다. 종교는 본래 정치와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런데 이제는 국가의 승인 없이는 종교 지도자가 탄생할 수 없다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최근 교황청과 중국이 주교 임명에 대한 합의를 연장했다는 소식은 이러한 기막힌 상황을 현실로 보여준다. 더 충격적인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상황을 사실상 방관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의 독립성을 지키기는커녕 정치적 타협을 받아들이며 상황에 순응하고 있는 듯하다.
교황청은 중국과 "존중과 대화"를 통해 협력하겠다고 말하지만, 그 '존중'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의문이다. 수십 년간 중국 정부의 탄압 속에서 신앙을 지켜온 지하 교회 신자들에게는 이 합의가 배신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목숨을 걸고 독립적인 신앙을 지켜온 사람들이 이제는 정부의 승인을 받은 주교 아래에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니, 이것을 진정한 종교적 자유라고 할 수 있는가? 그런데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상황을 묵인하는 태도를 보이며, 교회의 독립성 문제를 외면하고 있다. 더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번 협력이 사실상 가톨릭 교회가 중국 정부의 요구에 굴복한 모습이라는 점이다. 주교 임명이라는 중요한 종교적 결정이 이제는 교회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허가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교황청마저도 중국 정부의 승인 없이는 주교를 임명할 수 없는 이 상황에서, 교회의 독립성은 말뿐인 허상이 되어버렸다. 이 문제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명확한 대응을 하지 않는 것은 더욱 실망스럽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같은 이슬람 국가들에서도 종교 지도자가 곧 국가의 지도자로 군림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국왕이 종교적 권위를 겸하며, 이슬람 교리가 법의 기초가 된다. 이란에서는 최고 지도자가 종교적 권위를 이용해 정치적 결정을 주도하며, 국가의 모든 중요한 결정이 종교적 지도자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종교와 정치가 분리되지 않으며, 종교적 자유보다는 국가의 요구가 우선시된다.
결국, 이번 합의는 종교가 정치적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종교는 신앙과 도덕을 가르치는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의 이번 합의로 인해 종교는 정치의 하위 개념으로 전락한 듯하다. 신앙의 자유는 이제 중국 정부의 승인에 종속되어 있으며, 주교의 임명도 더 이상 교회의 독립적 결정이 아니라 국가의 통제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침묵하며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 것은 신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줄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종교 지도자를 국가가 임명한다"는 말이 농담이 아닌 현실이 되어버렸다. 정치적 타협 속에서 종교의 본질이 왜곡되고 신자들은 그로 인한 결과를 감내해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종교의 독립성은 어디로 갔으며, 신앙의 자유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다시 한번 진지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